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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감동시킨 탈북여성 "가족 붙잡힌 위기상황서 호주인이.."

입력 2013-03-2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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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27일) 초대 손님은 북한 인권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린 용감한 두 여성입니다. 최근 TED 강연으로 세계인들의 기립 박수를 받은 이현서씨, 그리고 국제여성상 수상자인 이애란 북한음식문화연구원장 나오셨습니다.

Q. 탈북자 최초 TED 연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이현서/탈북 대학생 : 작년 영국 부총리와 만찬에 참석했는데 그것을 테드측에서 보고 연락이 왔다. 500명의 청중이 모인 오디션을 보고 전세계적으로 투표를 거쳐서 그 자리에 서게 됐다.]

[앵커]

당시 이현서씨의 연설이 엄청난 반응을 얻었다고 하는데, 먼저 영상 보시고 얘기 계속 나눠볼까요.

Q. 청중 전원 기립 박수, 소감은?
[이현서/탈북 대학생 : 저만 받은 것은 아닌데 많지는 않았다. 내 이야기가 그런 반응을 이끌어낼 지 몰랐다. 강연 후 파티에서 강연자로 나온 전세계 명사들이 나에게 다가와 감동했다며 인사를 했다. 전세계적으로 그 영상이 10분만에 5천명이 봤다. 그 영상을 보신 분들이 북한을 어떻게 도와줘야 하냐고 연락을 많이 해오신다. 사람들이 김정은 정권만 알지, 그 아래 주민들의 실상을 잘 모른다. 북한을 알리는데 공조를 했다는데 뿌듯했다.]

Q. 국제사회에 북한 현실 알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애란/북한음식문화연구원장 :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시민사회이다. 시민의 힘으로 정치도 국가도 바꿀 수 있다. 비폭력으로 북한 정권을 바뀌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활동이 필요하다. 이현서씨가 정말 중요한 일을 했다. 나도 미 국무부에 가서 이야기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북한에서 반체제 인사를 만난다는 건 상상도 못한다. 실제 주민의 생활을 알수가 없다. 지도부의 안내를 받아 북한의 쇼윈도우만 보는 것이다. 경험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없다. 직접 경험한 사람이 유창한 영어로 강연한 게 획기적이었다. ]

Q. 17살 어린 나이에 혼자 탈북, 어떤 과정 겪었나?
[이현서/탈북 대학생 : 내가 살던 곳은 못살진 않았다. 중국에 친척이 있어 호기심이 많았다. 어느날 엄마가 편지를 가져오셨는데 그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북한 실정을 몰랐던 내게 정신교육을 시키기 위해 어머니가 읽어주셨다. 어머니 친구분이 2주간 아무것도 못먹어 이 편지를 받을 때는 죽어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우연히 운이 좋아 탈북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어느 날은 중국 공안에서 나를 잡으러 왔다. 경찰 20명 앞에서 심문을 받았다. 그런데 다행히 중국어를 완벽히 구사해 북한 사람이 아니라고 판명나 그곳으로 나올 수 있었다. 또한 친척 도움으로 중국국적을 취득했었다. 그것으로 한국에 왔을때 북한 사람이 아니라 중국 조선족동포로 오해 받기도 했다.]

Q. 북한에 있던 가족 동반 탈북 과정은?
[이현서/탈북 대학생 : 3국 루트를 통해서 입국한 게 아니라 그게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 나중에 가족 동반 탈북했을 때는 서울에서 출발, 중국 선양시, 양강도 해산시 거쳐 우리 집 앞에서 가족을 픽업에 라오스를 통해 올 수 있었다. 버스를 일주일 탔는데 검문을 4번이나 당했다. 다행히 중국 국적을 모두 가질 수 있었지만 중국말까지 시켜가며 확인하려 했다. 우리 가족이 라오스 국경을 넘자마자 당국에 잡혔다고 연락이 왔다. 벌금이 엄청났다. 나중에 돈이 모자랐다. 너무 암울했다. 그때 호주 여행객이 아무 조건 없이 3800달러를 주셨다. 그 분의 도움을 받아 가족이 탈북할 수 있었다. 그분이 하신 말이 나는 너를 도와준 게 아니라, 북한 사람을 도와준 것이라고 했다. 그분을 찾으려고 호주 신문에 연락했다.]

Q. 탈북자 중국에서의 생활, 어떤 점이 힘든가?
[이애란/북한음식문화연구원장 : 나 역시 3국 루트를 통해 탈북했다. 북한의 정치부에서 우리 가족을 정치범 수용소로 끌고 갈 긴박한 상황이었다. 수용소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지옥보다 더한 곳이었다. 그래서 죽기를 각오하고 탈북을 결심했다. 탈북은 피가 마르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군인들이 잡으러 왔을때 5개월짜리 우리 애가 막 울었다. 그때 심정은 하늘과 땅이 맞붙는 것 같았다. 막 달려가 아기를 안자마자 그 아기가 숨죽였다. 애기가 너무 울면 조사가 방해가 된다. 그래서 조사를 많이 방해했다.]

Q. 탈북 여성 인신매매 위험 노출, 실태는?
[이애란/북한음식문화연구원장 : 최근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중국으로 돈을 벌러 왔는데 화상채팅하는 곳에 끌려왔다. 그래서 자살시도를 했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포주가 그녀를 팔아먹고 탈북자라고 고발했다. 그래서 북송위기에 처해있다. 알려진 것은 극소수이다. 지금 이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팔려가고 있고 북송위기에 처해 있다. 북송 때문에 더 많은 인신매매를 당하는 것이다.]

Q. 대한민국 정착 과정, 어떤 점이 힘든가?
[이현서/탈북 대학생 : 2008년에 한국에 왔다. 베이징올림픽이 열렸을때 우리나라라고 응원할 수 없는게 힘들었다.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었다. 긴 분단을 겪으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고 그것을 받아드리는데 힘들었다. 탈북자를 바라보는한국의 사회의 편견도 힘들었다. 지금은 우리나라라고 당당히 이야기 한다. 탈북자는 편견때문에 정체성을 숨긴다. 슬픈 현실이다. ]

Q. 탈북 여성 성매매 유혹, 근절 방법 없나?
[이애란/북한음식문화연구원장 : 티켓다방에서 일하던 탈북 여성이 피살당했다. 탈북자의 80%가 여성이다. 탈북자들은 취업이 더 어렵다. 서비스업종에 취업을 많이 한다. 그러나 서비스업은 문화사업이다. 문화가 달라 탈북여성들이 적응하기 힘들다. 질좋은 일자리는 가기 힘들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한다. 탈북자들이 많이 모여서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나는 북한 특화 상품으로 통일 약과를 만드는데 탈북자들을 많이 채용하고 있다. 시민사회도 도와줘야 한다. 탈북자들이 만든건 더 사주시는 어떤 아량을 베풀어 주셨으면 한다. 그것이 남과북의 통일을 이루는 바탕이 될 수 있다.]

Q. 뛰어난 영어실력, 언제부터 공부했나
[이현서/탈북 대학생 : 영어는 중국어보다 더 힘들었다.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였다. 라오스에서 호주 여행객와 대화했을때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했다. 지금 미국인이 약혼자이다. 우연히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다가 사귀게 됐다. 엄마한테 인사를 시키려 집에 데려갔는데 엄마가 "내가 살다살다 미국놈과 밥을 먹는다"며 말씀하셨다. 아직도 별로 좋아하시진 않는다.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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